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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의 설계도, 그곳에 손흥민은 없다

토마스 프랭크의 새로운 토트넘은 이미 착공에 들어갔다.( 관련 기사 ) 유로파리그 우승이라는 숙원의 트로피는 새 시대의 주춧돌이 아닌, 지난 시대의 묘비명이 될 운명인가.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손흥민의 자리는 그 설계도 위에 보이지 않는다. 이적의 기로에 서 있는 손흥민 선수 (AI 생성 이미지) 새로운 왕조는 옛 영웅을 기억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 토마스 프랭크 감독은 손흥민과의 동행에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마쳤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구단의 미래를 그리는 냉철한 건축가가 낡았지만 상징적인 건물을 허물기로 결정하는 것과 같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일 뿐이다. 만약 손흥민이 잔류를 택한다면, 그의 시즌은 익숙한 잔디 위가 아닌 벤치의 플라스틱 의자 위에서 흘러갈 공산이 크다. 프랭크의 머릿속은 오직 '젊음' 과 '속도' 라는 두 단어로 채워져 있다. 이미 영입한 마티스 텔은 그 시작이다. 그의 영입 리스트에 오른 브라이언 음뵈모, 사비 시몬스, 모하메드 쿠두스 등은 모두 20대 중반의 혈기왕성한 자원들이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프랭크는 지난 10년의 역사가 아닌, 앞으로의 10년을 위한 로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그에게 손흥민은 위대한 전설이지만, 미래의 동의어는 아니다. 클럽의 시간은 개인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다. 숫자로 남은 10년, 그 의미를 묻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푸스카스상, PFA 올해의 팀, 그리고 마침내 들어 올린 유럽 대항전 트로피. 손흥민이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쌓아 올린 기록들은 그 자체로 기념비적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래서 이 숫자들이 대체 프랭크의 청사진 앞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그의 지난 10년은 완벽한 피날레로 끝난 교향곡과 같다.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지만, 새로 부임한 지휘자는 전혀 다른 장르의 악보를 들고 나타났다. 이제 앙코르 무대는 없다. 필자가 기억하는 그는 언제나 도전을 즐겼다. 분데스리가에서 건너와 ...

앙헬 고메스, 맨유 대신 마르세유를 택한 진짜 이유: 감독의 철학을 좇다

‘Here we go’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나 그 종착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 귀환 서사가 아니었습니다. 앙헬 고메스, 한때 올드 트래포드의 미래로 불렸던 그 작은 거인은 프랑스 남부의 항구 도시, 마르세유에 닻을 내렸습니다.

언론은 그의 선택을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하지만 축구선수의 커리어가 단순히 더 큰 무대를 향한 등반 과정에 불과할까요? 저는 이 이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클럽의 명성이나 리그의 크기를 넘어선, 한 명의 아티스트가 자신의 축구 철학을 지키기 위한 의식적인 선택에 가깝습니다.

올림피크 마르세유는 명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미지 AI 생성

숫자가 말하지 않는 지휘자, 파울로 폰세카

고메스의 커리어를 맨유 시절의 조급한 데뷔와 좌절, 그리고 LOSC 릴에서의 부활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게으른 분석입니다. 핵심은 그가 릴에서 ‘어떻게’ 반등했는가에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파울로 폰세카 감독이 있습니다. 이 이름이야말로 고메스라는 악기를 완벽하게 조율해 낸 지휘자였습니다.

168cm의 왜소한 체격. 프리미어리그의 정글에서는 약점으로 치부되던 그 조건은 폰세카의 시스템 안에서 오히려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폰세카는 고메스를 3선으로 내렸습니다. 상대의 물리적 압박이 가장 덜한 그 공간에서, 고메스는 마치 심해를 유영하는 잠수정처럼 움직였습니다. 그의 탈압박은 생존 기술이 아닌, 공격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그의 패스는 수비 라인 전체를 무장해제시키는 마스터키였습니다. 지난 시즌 기록한 2골 10도움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폰세카의 지휘 아래, 공을 소유하고 경기를 설계하는 '두뇌'로 거듭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더 이상 번뜩이는 유망주가 아닌, 그라운드의 건축가였습니다.

철학의 계승자, 로베르토 데 제르비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고메스를 만개시킨 폰세카는 올여름 AC 밀란으로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고메스는 왜 스승을 따라가지 않았을까요? 혹은 자신을 성장시켰던 맨유의 재영입 제안에 응하지 않았을까요? 여기에 이번 이적의 본질이 숨어있습니다. 고메스는 폰세카라는 ‘사람’을 따른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을 좇았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의 연장선에 있는 인물이 바로 마르세유의 새 사령탑, 로베르토 데 제르비입니다. 폰세카와 데 제르비의 축구는 같은 뿌리를 공유합니다. 그들은 점유율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상대를 끌어들여 뒷공간을 창출하는 ‘유인(bait)’의 대가들입니다. 그들의 축구는 잘 짜인 체스 게임과도 같아 모든 선수가 미끼가 되고, 모든 패스는 함정으로 이어집니다. 브라이튼에서 데 제르비가 보여준 축구는 프리미어리그에 전술적 충격을 안겼습니다. 고메스는 잉글랜드 복귀 대신, 자신의 재능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극대화시켜 줄 또 다른 마에스트로, 데 제르비의 오케스트라에 합류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챔피언스리그: 명분이 아닌 증명의 무대

물론 챔피언스리그는 매력적인 무대입니다. 별들의 전쟁이 울려 퍼지는 그곳을 마다할 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메스에게 챔피언스리그는 단순히 커리어에 한 줄 추가될 업적이 아니라, 자신의 축구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최적의 장소였을 것입니다. 신체적 열세를 극복하고 기술과 지능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그의 방식이 유럽 최정상 무대에서도 통용될 수 있음을 보여줄 기회인 셈입니다.

토트넘, 맨유 등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관심은 달콤했을 것입니다. 더 많은 부와 명예가 보장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알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그들의 관심이 '앙헬 고메스'라는 선수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FA 대어’라는 시장의 평가에 따른 것인지를 말입니다.

귀향이 아닌 정체성을 향한 여정

결국 앙헬 고메스의 선택은 우리에게 축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선수의 가치는 리그의 이름값이나 유니폼의 무게로 결정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철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감독과 시스템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일까요?

고메스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의 마르세유 행은 단순한 이적이 아닌, 자신의 축구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여정입니다. 그 여정의 끝이 어디일지, 섣부른 판단 대신 조용히 그의 플레이를 지켜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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