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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낭만과 결별하다: 포스테코글루 경질과 프랭크 선임이 뜻하는 것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린 감독을 경질하고, 2부 리그의 설계자를 데려왔다.(관련 기사) 토트넘 홋스퍼의 행보는 일견 모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기묘한 선택이야말로, 클럽이 마침내 낭만주의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혹독한 현실주의로 선회했음을 알리는 가장 명확한 신호다.
챔피언의 역설, 달콤했던 독배
엔제 포스테코글루는 토트넘에 16년 만의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유로파리그 결승전의 환희는 분명 짜릿했다.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차고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장면은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영광의 이면을 들여다보자. 리그 17위. 단일 시즌 최다 패, 최저 승점. 이것이 유럽 대항전 챔피언의 민낯이었다.
영광과 재앙의 기이한 동거. 구단 수뇌부는 결국 칼을 빼 들었다. "가장 어려운 결정 중 하나"라는 수사는, 사실상 실패를 인정한 공허한 독백에 가깝다. 포스테코글루의 축구는 매혹적이었으나 치명적인 결함을 내포한, 마치 아름답지만 위태로운 구조의 유리 건축물과 같았다. 화려한 공격력에 취해 있는 동안, 건물의 기둥(수비)은 부서지고 있었다. 유로파리그 우승이라는 달콤한 독배는 결국 그를 무너뜨렸다. 그렇다면, 토트넘은 이 잔해 위에서 무엇을 다시 세우려는 것일까?
토마스 프랭크, 낭만 없는 설계자의 청사진
그 해답이 바로 토마스 프랭크다. 덴마크 출신의 이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도,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인물도 아니다. 그는 마치 묵묵히 도시의 상하수도 시스템을 설계하는 엔지니어와 같다. 눈에 띄진 않지만, 그가 구축한 시스템 위에서 도시 전체가 안정적으로 기능한다. 필자가 기억하는 그의 브렌트포드는 그랬다. 제한된 예산, 평범한 선수단. 그러나 그들은 프리미어리그의 포식자들 사이에서 끈질기게 생존했고, 때로는 그들을 물어뜯었다.
프랭크의 브렌트포드는 데이터와 통계에 기반한 '머니볼'의 성공 사례로 곧잘 포장되곤 한다. 하지만 그 숫자가 대체 무슨 의미인데?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그라운드 위에서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구현해내는 그의 조직력에 있다. 그의 축구는 격정적인 록스타의 솔로 연주가 아닌, 각 연주자가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조화를 이루는 잘 조율된 오케스트라에 가깝다. 모든 선수는 시스템의 일부로서 기능하며, 개인의 기량보다는 팀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우선시한다. 이것이 과연 현란한 공격 축구에 길들여진 토트넘 팬들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을까?
손흥민, 새로운 질서의 첫 시험대
이제 시선은 자연스레 손흥민에게로 향한다. 포스테코글루 체제에서 절대적인 에이스이자 해결사였던 그는, 프랭크라는 새로운 지휘자의 오케스트라에서 어떤 악기를 배정받게 될까. 프랭크는 그의 잔류를 원한다고 했다. 당연한 수사다. 어떤 지휘자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조율이다.
토트넘이 손흥민에게 '적절한 이적료'를 운운하는 것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이는 클럽의 방향성이 개인의 이름값보다 시스템의 완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상징적인 선언이다. 프랭크 감독과의 면담은 단순한 재계약 논의를 넘어, 손흥민이 이 새로운 질서에 편입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한 시대가 저물었다. 토트넘은 이제 ‘보는 축구’에서 ‘이기는 축구’로의 이주를 선언했다. 그 대가가 클럽의 상징과도 같았던 에이스와의 작별이 될지, 아니면 더 견고한 팀으로의 재탄생이 될지는 오직 시간만이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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